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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를 읽고- 제22회 영남일보 책읽기상 독서감상문 공모전 우수상(2015년)
    글밭 2023. 5. 19. 16:20

     

    흔들리며 피는 용기:'미움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를 읽고- 22회 영남일보 책읽기상 독서감상문 공모전 우수상(2015)

    초인종이 울렸다. 심리 상담을 통해 치료를 시작한 아들이 돌아올 시간이다. 내 마음은 너무도 메말라 바스락거리며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문을 열자 택배상자가 도착했다. 힘든 마음을 다독이는 격려의 편지와 함께 한 권의 책이 다소곳이 누워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까. ‘미움받을 용기라는 여섯 글자가 보이자 움츠렸던 방의 기운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순간 착각처럼 아들을 만났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유독 수줍음이 많고 남 앞에 나서기를 꺼려했다. 내가 좀 살갑게 굴면 평소 없던 웃음을 겨우 빙그레 지었다. 세월이 흐르면 가슴이 넉넉해지려니 생각하며 아슬아슬 기다렸다. 위태로운 마음으로 이십여 년 동안 아들의 삶의 기슭에서 기웃거렸다. 나의 정성스런 마음이 부족한 탓이었을까. 유독 인정욕구와 열등감이 강한 아들의 삶에서 나침판은 수시로 기우뚱거렸다. 급기야 아들은 사람과의 관계 맺기에서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행복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사는가? 서두의 이 두 질문은 책장을 열고픈 마음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세상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한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로 이어지는 전개가 마음을 끌었다. ‘프로이드정도 밖에 모르는 심리학의 무식쟁이인 나에게 아들러는 서걱거리는 이름이었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은 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잘 떠오르지도 않는 어린 시절을 자꾸 기억해내라고 하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라는 게 짜증스럽단다. 지금껏 달래고 을러서 등을 떠밀었다. 그런데 자신의 문제를 과거의 어떤 일탓으로 돌리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트라우마에 발목을 잡히며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프로이드에게 아들을 계속 매달아 두기엔 나도 지쳐갔다.

    너무도 성향이 다른 두 아이를 키우며 아들은 나에게 늘 함량 미달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호통 쳤고, 그것이 아들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지혜주머니라고 여겼다. 그러나 결국 망가진 아들 앞에서 죄책감과 자괴감에 시달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아들러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라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을 이용해 불안이나 공포를 지어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순간 나는 프로메테우스가 코카서스의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고통에서 해방되는 기분이 들었다.

    책은 생각보다 빨리 읽혔다. 내가 궁금한 점을 청년이 대신 질문해 주었고, 내가 이해 못 하고 있는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깨달음을 얻으면 책 속 청년도 신기하게 같은 시점에서 같은 공감을 해주었다. 아들에게 과거의 극복으로 현재의 아픔을 이기자고 설득하기엔 공염불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대신 아들의 책상에 말없이 책을 올려 두었다. 때마침 나타난 아들러 심리학이 사막에서 헐떡이는 나에게 한 모금 물이 되어 준 것처럼 아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시길 기도했다.

    아침 햇살이 책표지의 용기라는 두 글자를 어루만지고 있다. 아들이 끼워둔 책갈피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은 내 맘을 거두기로 한다. ‘과제의 분리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읽는 것은 나의 과제가 아닌 아들의 과제, 즉 아들이 해야 할 일이지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그 선택의 최종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 아들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미덥지 못한 마음으로 너를 위해서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진짜 너를 위해서일까? ‘나를 위해서는 아닐까?

    아들의 진정한 행복을 빼앗은 나의 속마음이 엿보인다.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기를 강요하며 항상 눈치 보는 삶이 되라고 가르쳤다. 즉 우리는 타인의 인정(認定)’을 얻으려는 인정욕구에 묶여 살았다. 하지만 이제 포기하려고 한다. 내가 아무리 잘 보이려고 애써도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그 누구도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나만큼 오래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얻고 행복해지기 위해 아들러의 말을 되새김질 해본다. ‘일반적으로 인생의 의미란 없다.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철학을 넘어 종교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사람들과 맞부딪치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인가? 이 책은 정답을 똑똑하게 말한다. ‘과거 트라우마적 사건에 현재의 내 인생을 맡기지 마라. 우주에 나 홀로 남은 것이 아닌 이상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떤 종류의 고민이든 거기에는 반드시 타인과의 관계가 얽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미움 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진다는 뜻이다.

    산허리에서 내려 보는 아들의 걸음걸이는 허위허위 느리다. 언제쯤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자주 조바심을 쳐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가 바로 인생은 산 정상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인생을 산길 위에서 보내게 되는데, 그 길 위에서 보내는 인생을 가짜라고 여길 참이냐며 아들러가 내 머리채를 잡는다. 그러면서 인생은 하나의 선이 아닌 ()의 연속이라고 주장한다. 즉 인생은 지금이라는 무수한 찰나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여름밤의 무더위가 물결처럼 일렁인다. 이 여름 아들러는 목청껏 외치고 있지는 않을까? 너희들이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야.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라고. 산길 사이로 지금, 여기를 춤추듯 살겠다고 다짐하는 의젓한 아들의 모습이 겹쳐지고 있다. 우리의 가슴엔 변하고자 하는 용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용기, 미움 받을 수 있는 용기가 흔들리며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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