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코스모스

우주배경복사

글울림 2023. 5. 25. 21:35

우주배경복사

허블의 상상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우주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팽창하고 있다면, 만약 그 시간을 뒤로 돌리면 어떻게 될까? 천체들의 거리는 과거로 갈수록 점차 가까워질 것이다. 아주 먼 가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물질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지고 결국 뜨겁게 뭉쳐질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0의 시간에 이르면 우리 우주 전체는 아주 작은 공간 안에 극도로 압축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1948, 미국의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는 허블의 관측과 그 이후에 이루어진 천체 물리학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우주의 초기 상태를 설명했다. 초기 우주는 밀도와 온도가 매우 놓은 상태였다. 이후 대폭발과 함께 급격히 팽창을 시작했고, 밀도가 낮아짐에 따라 점차 식어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조지 가모프는 만약 실제로 거대한 폭발이 있었다면 이것이 만들어낸 엄청난 양의 열과 복사선이 우주 전체에 흔적으로 남았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이 우주의 흔적은 우주배경복사로 불리게 되었다. 우주배경복사는 쉽게 생각하면 밥솥을 여는 순간 주변으로 확 퍼져나가는 뜨거운 김 같은 것이다. 우주 초기의 뜨거운 열기는 우주의 급격한 팽창과 함께 전체 공간으로 빠르고 고르게 확산되었을 것이다. 이제 이것만 찾아내면 된다. 그렇게 되면 우주가 고밀도의 상태에서 폭발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빅뱅 이론의 증거를 찾게 된다. 과학자들은 이 흔적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1964, 미국 뉴저지 벨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아노 펜지어스과 로버트 윌슨은 안테나를 통해 인공위성의 신호를 받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예민한 기계가 계속해서 잡아내는 전파 잡음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는데, 어떤 방법을 써도 잡음을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안테나에 쌓인 비둘기 똥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안테나를 광이 나도록 닦아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전파 잡음은 무슨 수를 써도 끝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독특하게도 이 잡음이 안테나 방향을 바꾸어도, 날씨가 변하거나 계절이 바뀌어도 언제나 일정하게 잡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상했다. 이는 잡음을 일으키는 에너지가 모든 곳에 고르게 퍼져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펜지어스와 윌슨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들이 발견한 잡음은 과학자들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빅뱅의 증거인 우주배경복사였다. 그들의 사연이 기사에 나온 것을 우연히 본 물리학자들은 이것이 우주배경복사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펜지어스와 윌슨은 이 발견으로 1978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로써 가설로만 여겨졌던 빅뱅 이론은 정상과학의 패러다임을 차지하게 되었다. 오랜 기간 인류에게 상식적인 우주관으로 받아들여졌던 정적인 우주론은 폐기되었고, 우주가 뜨거운 대폭발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빅뱅 이론이 인류의 우주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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